하루아침에 사라진 ‘크보빵’..SPC, 결국 생산 중단

 SPC삼립이 최근 큰 인기를 끌었던 ‘크보빵’(KBO빵)의 생산을 전격 중단한다. 이는 경기 시흥시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여성 노동자 사망 사고 이후 불거진 여론의 반발과 불매 운동의 영향으로 해석된다. 지난 29일 SPC삼립은 자사 웹사이트를 통해 "한국야구위원회(KBO)와 협의해 크보빵 생산을 중단한다"며 "안전 강화 활동과 소비자 신뢰 회복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중단 시점은 다음 달 1일부터다.

 

크보빵은 지난 3월 프로야구 시즌 개막에 맞춰 SPC삼립과 KBO가 협업해 출시한 제품으로, 야구선수 사진이 그려진 ‘띠부씰’이 포함돼 있어 출시 직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출시 41일 만에 판매량 1000만 봉지를 돌파하며 삼립 제품 중 역대 최단 기록을 세웠고, 띠부씰 수집 열풍으로 일부 제품은 웃돈이 붙어 거래되기까지 했다. 크보빵의 흥행은 SPC삼립 주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3월 24일에는 전일 대비 8% 상승한 5만7500원을 기록했고, 이달 초 6만3000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새벽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산업재해로 인해 상황은 급변했다. 당시 공장에서 윤활유를 바르던 50대 여성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상반신이 끼이는 사고로 사망했고, 이 공장이 바로 크보빵을 생산하는 주요 생산라인이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반발이 커졌다. 일부 야구팬들은 ‘화려한 협업 뒤의 비극’이라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매 서명 운동에 나섰고, 이 운동에는 현재까지 2300명이 넘게 동참했다. 이들은 KBO에도 협업 중단을 요구했고, KBO 역시 논란의 확산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SPC삼립은 논의 끝에 생산 중단을 결정했다. 시화 공장 가동 역시 사고 직후 중단됐으며, 이 공장은 SPC삼립 전체 생산량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어 회사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손실이 예상된다. IBK투자증권은 이번 사고와 여론 악화를 반영해 SPC삼립의 목표 주가를 기존 7만4000원에서 5만9000원으로 20% 하향 조정했고, 투자 의견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 실제로 사고 당일 SPC삼립 주가는 3.9% 하락했고, 이후 5만3000원 선까지 떨어졌다.

 

SPC는 실적보다 소비자 신뢰 회복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 김범수 대표이사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김주영 의원실 주관 간담회에 참석해 고개를 숙였고,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안전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SPC는 사고 설비를 관계 기관 조사가 끝나는 대로 전면 철거·폐기하고, 매달 노조와 생산·안전 책임자가 참여하는 노사 합동 안전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외부 전문기관과의 합동 점검 주기도 분기별로 확대하고, 안전보건 인력도 증원해 선제적 현장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다.

 

근무 환경 개선도 병행된다. 시화 공장에서는 생산라인별로 매주 하루씩 가동을 중단하고, 이 시간을 설비 점검과 안전 강화에 투입하기로 했다. 일부 생산라인에는 4조 3교대제를 시범적으로 도입하고, 연속 근무를 줄이기 위한 노사 협의도 이어갈 방침이다. 더불어 근로자 대상 1대1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4주간 운영하고 있으며,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근로자에겐 추가적인 치료도 지원하고 있다.

 

현장 안전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도 병행된다. 정기적인 안전 간담회 확대, 안전 핫라인 운영, 스마트 제안 시스템 구축 등을 통해 안전을 저해하는 관행과 요소를 발굴하고 이를 개선하는 지속 가능한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SPC는 홈페이지를 통해 “이번 일로 심려를 끼쳐드린 모든 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앞으로도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전사적인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범수 대표이사 외에도 도세호 공동대표와 황종현 이사회 의장도 참석해 고개를 숙였다. 도세호 이사는 “2022년 SPL 계열사에서 발생한 사고 이후 안전 강화를 위해 노력했지만 근본적 변화에는 실패했다”며 “1천억 원 규모의 안전경영 투자 계획을 확대·연장하고 설비 자동화와 안전관리 인력 강화에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크보빵은 SPC삼립의 마케팅 성공 사례로 남았지만, 중대한 산업재해 앞에서는 소비자와 사회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단순한 상품이 아닌 기업의 책임 윤리가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시대, SPC삼립이 앞으로 어떤 행동으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