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女 감염자, 안심은 금물..심혈관 위험 급상승

혈관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경직된다. 혈관이 뻣뻣해지면 혈류의 탄력성이 감소해 뇌졸중, 심근경색 등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이 높아진다. 유럽심장학회(ESC) 학술지 유럽심장저널(European Heart Journal)에 실린 이번 연구 논문에서 연구진은 “코로나19가 직접적으로 혈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이미 확인됐다”며 “이번 연구는 코로나19 감염이 ‘조기 혈관 노화(early vascular aging)’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 시테 대학교 로사 마리아 브루노(Rosa Maria Bruno) 교수는 “실제 나이보다 혈관이 더 늙어 심혈관 질환에 취약해질 수 있다”며 “심근경색과 뇌졸중 예방을 위해 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2020년 9월부터 2022년 2월까지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호주, 미국,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 등 총 16개국에서 2,390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코로나 미감염, 감염 후 미입원, 일반 병동 입원, 중환자실 치료 등 4가지 그룹으로 나뉘었다. 연구진은 경동맥(목)에서 대퇴동맥(다리)까지 혈압 파동이 이동하는 속도인 경동맥 대퇴부 맥파 속도(carotid-femoral pulse wave velocity·PWV)를 측정해 혈관 나이를 추산했다. PWV 수치가 높을수록 혈관이 뻣뻣하고, 실제 나이보다 혈관 나이가 많다는 의미다. 측정은 감염 6개월 후와 12개월 후 두 차례 이루어졌다.
연구 결과, 코로나19에 걸린 모든 사람은 감염되지 않은 사람보다 혈관이 더 뻣뻣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에서 그 차이가 두드러졌으며, 장기 후유증(Long COVID) 증상이 있는 경우 혈관 경직 정도가 더 심했다. 여성 참가자의 경우, 입원하지 않은 감염자는 PWV가 비감염자보다 평균 0.55m/s 증가했고, 일반 병동 입원자는 0.60m/s, 중환자실 입원자는 1.09m/s 증가했다. 연구진은 PWV가 0.5m/s 증가하면 약 5년의 혈관 노화에 해당한다고 설명하며, 예를 들어 60세 여성의 경우 심혈관 질환 위험이 약 3% 증가한다고 밝혔다. PWV가 1m/s 이상 증가할 경우 혈관 노화는 약 7.5년, 심혈관 질환 위험은 약 5.5%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백신 접종자는 미접종자보다 혈관 경직이 덜한 경향을 보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코로나19 관련 혈관 노화는 안정화되거나 다소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여성이 남성보다 더 취약한 이유에 대해 브루노 교수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혈관 내피 세포에 존재하는 안지오텐신 전환효소2(ACE2) 수용체를 통해 침투하며, 이 과정에서 혈관 기능장애와 조기 노화를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성은 남성보다 면역 반응이 더 빠르고 강력한 편인데, 이는 감염으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는 동시에 초기 감염 이후 혈관 손상을 더 심하게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는 조기 혈관 노화가 예방과 관리가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브루노 교수는 “혈관 노화는 측정이 비교적 간단하며, 생활습관 개선, 혈압 강하제, 콜레스테롤 강하제 등 기존 치료법으로 관리할 수 있다”며 “조기 혈관 노화가 확인된 사람은 심근경색과 뇌졸중 위험을 낮추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향후 수년간 참가자들을 추적 관찰하며,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조기 혈관 노화가 실제 심혈관 질환 발병 위험 증가로 이어지는지를 확인할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코로나19가 단순한 호흡기 감염을 넘어 장기적인 심혈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하며, 특히 여성에서 장기 후유증과 혈관 손상의 위험이 높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감염 후 장기적인 심혈관 모니터링과 조기 예방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혈관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PWV 측정과 생활습관 관리, 필요 시 약물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권고된다. 이번 연구는 다국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가장 포괄적인 코로나19와 혈관 건강 관련 연구 중 하나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