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갈 바엔 사표 쓴다"…금감원 뒤흔드는 '지방 이전설'에 변호사 벌써 사직서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안 발표 이후, 금융감독원과 여기서 분리 신설될 금융소비자보호원(금소원)이 모두 공공기관으로 지정되어 지방으로 이전할 것이라는 '지방 이전설'이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특히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선거 공약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금감원 내부 직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핵심 인력의 대규모 이탈과 업무 효율성 저하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8일,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전 직원을 대상으로 비공개 긴급 설명회를 열어 진화에 나섰다. 이 자리에서 직원들은 공공기관 지정에 따른 지방 이전 가능성과 그로 인한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 인력의 이탈 우려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 수석부원장은 "국정기획위원회 초기 논의 단계에서 지방 이전 의견이 제기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최근 개편안 논의 과정에서는 금감원과 금소원 모두의 지방 이전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술렁임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미 직원들 사이에서는 세종시나 부산시 등 구체적인 이전 지역까지 거론되며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신설되는 금소원의 경우, 현행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신규 인가 공공기관의 수도권 외 입지를 우선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지방 이전이 기정사실화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가장 큰 문제는 '인력 엑소더스'다. 이미 금융당국의 조직개편 발표 직후 한 변호사 직원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내부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금융감독 업무의 특성상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회계사, 변호사 등 전문직 인력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이들이 지방 이전을 이유로 조직을 떠날 경우, 금융감독 및 검사 기능의 심각한 저하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이 내부 구성원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금감원 직원들의 현실적인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한 직원은 "지방으로 이전하면 금융사 검사를 위해 서울로 출장을 다녀야 해 출장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이는 결국 금융사 분담금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직원은 "제재심의위원회를 열 때마다 금융사 임직원들이 지방까지 내려와야 하는 비효율이 발생할 것"이라며 업무 공백과 사회적 비용 증가를 우려했다.
금감원에서 금소원을 분리하는 과정 자체도 험로가 예상된다. 현재 금감원 내에서 민원 업무를 주로 담당하는 금융소비자보호처(금소처)는 약 500명 규모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는 전문성을 살리기 어려운 '험지'로 인식되어 기피 부서로 꼽혀왔다. 금감원은 순환근무를 통해 불만을 완화해왔지만, 조직이 완전히 분리되면 상황은 달라진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금소원으로 이동하게 될지를 두고 "현 부서 그대로 이동한다", "소비자학 전공 입사자가 우선 대상이다" 등 각종 시나리오만 무성한 상황. 한 금감원 관계자는 "순환근무 원칙에 따라 잠시 금소처에 와서 고생했는데, 조직 분리로 아예 그곳에 눌러앉게 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 있다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고 흉흉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정부의 개편안이 의도치 않게 조직의 근간을 흔드는 뇌관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