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죽였다" 인정하고도 "돈은 못 줘"…법원의 기막힌 판결, 대체 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 제2민사부는 최근 여순사건 구례 지역 희생자 26명의 유족 14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41억 5천만 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희생자 23명의 유족 126명에게 총 33억 7천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희생자 26명 중 25명이 당시 군인과 경찰 등 국가 공무원들의 위법한 직무집행 과정에서 희생되었다고 판단, 국가의 배상 책임을 명확히 했다. 다만 희생자 1명에 대해서는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16명의 유족에 대해서는 청구 권리가 소멸했거나 소송 대리권이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 또는 각하했다. 핵심은 ‘3년’이라는 단기 소멸시효였다. 재판부는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희생자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3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해야만 배상 청구권이 유효하다고 보았다. 이 기한을 넘긴 유족들은 70여 년 만에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고도 정작 배상은 한 푼도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 외아들인 A씨의 사례는 이러한 소멸시효 적용의 비정함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A씨는 희생자의 유일한 유족이었으나, 법원이 소멸시효 완성을 이유로 그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사실상 희생자 한 명에 대한 배상 자체가 통째로 증발해버리는 결과가 초래됐다. 수십 년간 억울함을 안고 살아온 유족에게 너무나 가혹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유족 측은 이러한 법원의 판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족의 법정대리인인 서동용 변호사는 2021년 7월 제정된 ‘여순사건 특별법’을 근거로 소멸시효가 중단되었다고 주장한다. 특별법 제정 자체가 국가가 배상 책임을 인정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표명한 것이므로, 그 시점부터 3년의 소멸시효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는 논리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A씨를 포함한 모든 유족이 배상받을 길이 열리게 된다. 서 변호사는 또한, 당시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못해 봉기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에 대해서도 국가의 배상 책임이 있는데, 재판부가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유족들은 법무부 장관에게 이번 판결에 대해 국가가 항소하지 말아달라고 공식적으로 요청한 상태다.